오늘 아침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습니다. "야구 몰라요" 유행어로 유명한 하일성 해설위원이

9월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본인의 사무실에서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해 야구 중계를 많이 보는데 하일성 씨는 특유의 말투와 유행어로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해설자였는데요. 고인의 자살 뒤에 숨겨진 생활고가 밝혀져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KBO 사무총장을 지낸 하일성 씨는 체육 선생님으로 활동하다 1979년 동양방송(TBC) 야구

해설 위원으로 해설 쪽에 입문한 뒤 KBS, KBS N 스포츠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유명

야구 해설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1949년 2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한 하일성 씨는 1964년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1967년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야구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고된 훈련 등의 이유로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1968년 2월부터 육군 백마부대에서 복무하였고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던 하일성 씨는

대학교 졸업 후에 경기도 김포 양곡고등학교, 서울 환일고등학교를 걸치며 체육교사로

일했습니다.




1979년 당시 배구 해설위원이었던 오관영 씨의 권유로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하일성 씨의 해설위원 인생이 시작됩니다.




하일성 씨는 해설계에서 구수한 입담과 "야구 몰라요", "역으로 가나요?", '거 봐요, 제 말이 맞죠?" 등 

수많은 유행어를 남기며 대한민국 대표 야구 해설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또한 해설 뿐만 아니라

가족오란관, 아침마당 예능 프로에도 출연하며 야구 외 방송에서 얼굴을 많이 비췄습니다.


그는 2002년 1월 심근경색 투병 후 무려 세차례 수술을 받고 건강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나 싶더니 하일성 씨는 다시 해설위원으로 복귀했습니다.




하일성 씨는 2008 베이징 하계 올림픽 금메달 수상,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에서 준우승할 당시에 야구단 단장으로 대한민국 야구계에 일조습니다.




하일성 씨는 총장 임기를 마친 직후인 2009년 8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긴장감,

짜릿함,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하며 "제 묘비명에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써달라"고 말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에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2009년 10월 SK Wyverns 대 KIA Tigers 의 한국시리즈 두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KBS 야구해설 임시적으로 복귀한 하일성 씨는 2010년 스포츠 케이블 방송인

KBS N 스포츠 채널의 야구해설위원을 잠시 맡았으나 2014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하차했습니다.


작년까지 K-STAR의 일본프로야구 이대호 선수의 출전 경기 야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2016년 9월 8일 사망했습니다. 




하일성 씨는 지난해 지인의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주는 대신 5000만원을 받는

사기 혐의로 입건됐을 때 "부동산 사기로 빌딩을 날린 뒤 양도세만 떠안아 이를 갚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며 "집과 차도 모두 팔고 빚을 내 세금을 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하일성 씨가 남긴 저서로는 야구교실(1994), 하일성의 나는 밥보다 야구가 좋다(1994), 본부석의

수사반장(1994), 하일성 없이도 프로야구를 10배 재미있게 즐기는 책(1995), 하일성 이야기(1998),

최신 야구교실(1999), 인생은 1%의 싸움이다(2007),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2013)

등이 있습니다. 책도 대부분 야구에 관련된 책으로 하일성씨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네요.




한편 하일성 씨는 9월 8일 오전 7시 56분경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스카이엔터테인먼트 송파 사무실에서

목을 맨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아직 유서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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